초상이 났다. 올해 아흔 넷 되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침부터 동네에 곡소리가 요란하다. 상여소리도 들린다. 상여소리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에 가까운 슬픔을 준다. 상주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내 가슴이 미어진다. 눈물이 난다. 난 돌아가신 할머니를 본적도 없다. 그런데도 상주처럼 눈물이 난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의 상여가 생각나고 상여를 뒤따르던 나의 슬픔이 십삼년이 지난 지금 내 가슴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때도 그랬지. 처음엔 슬퍼서 울고, 다음엔 엄마가 불쌍해서 울고, 다음엔 엄마없이 살아야 할 내가 불쌍해서 울고, 그 다음엔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모든 슬프고 괴로운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그냥 내 설움에 내가 한없이 울었었지. 우리가 살면서 그렇게 대담하게 울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눈치 안보고 맘껏 울 수 있는 날. 그렇게 실컷 울고 나면 알 수 없는 후련함이 있다.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았던 것들을 눈물로 흘려 보냈기 때문일까? 초상은 일종의 전환점이다. 그동안 쌓인 슬픔을 털어버리는 기회이기도 하고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살아갈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인생의 전환점. 난 그렇게 생각한다.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에 무거운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어머니 생각이 난다. 이담에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어머니는 내게 남은 단 한번의 기회를 쥐고 계신다. 그 기회는 언젠가는 올것이다. 다만 아주 먼 후일이 되길 바랄 뿐이다. 죽어서 슬피 우느니 살아서 한번 더 웃을 일이다. 내가 삼십도 되기 전에 조부모님,부모님의 초상을 치루면서 깨달은 것이다. 난 세상을 다 알기도 전에 인생의 전환점을 너무 많이 돌았나 보다. 이리 어지러운걸 보면. 이 찌는 날씨에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김치찜 만들어서 초상집 일하느라 힘들었을 우리 신랑이랑 어머니랑 소주 한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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