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시누의 생일이다. 생일인줄은 벌써 부터 알고 있었는데 미역국 끓일 준비를 왜 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따로 살때는 몰랐는데 어머니랑 같이 살게 되면서 한가지 결심한게 있었다. 어머니가 출산을 하신날이 되면 미역국을 끓여 드리겠다는. 스무살 무렵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었다. 생일이 애들을 위한 날이 아니라 고생한 엄마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날이라고. 그 후로 내 생일이 돌아오면 쑥쓰러워도 꼭 인사를 했었다. 낳아 주시고 이만큼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결혼 해서는 잘난척 하며 신랑에게도 시켰다. 역시 쑥쓰러워 했지만 못이기는척 신랑은 내 말을 들었다. 작년 초겨울 큰 아주버니의 생일 때 우리 집에서도 미역국을 끓여 드렸다. 큰 아들 낳으시느라 고생 하셨노라는 위로의 말씀과 함께. 그런데 오늘은 큰시누 생일인것만 기억하고 준비를 안한것이다. 그것도 아침 밥을 먹고 나서 생각을 했으니.에구 마침 어머님이 파마를 하러 가셔야겠다고 하시길래 재빨리 따라 나섰다. 어머니는 시골 싸구려 미용실을 이용 하신다.한번에 만원하는. 가실 때마다 온 식구가 총 출동을 해서 모셔다 드린다. 오늘도 윗집 아주머니가 어머니 호강한다고 부러워라 하신다. 우리 어머니 은근히 좋아 하신다. 어머니를 내려 드리고 아침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시장을 봤다. 서둘러 돌아와서 청소하고 다시 어머니 모셔오고 진짜 오랫만에 자장면을 사먹었다. 이래 저래 끝내주는 하루다. 저녁은 평소보다 일찍 시작 했다. 미역국도 끓이고 어머니 좋아하시는 조기도 찌고 버섯전도 지지고 브로콜리도 데치고 한참 수선을 떨었다. 부억에 들어오셔서 어머니 한 말씀 "오늘 뭔 날인디 이리 지지고 볶고여?" 아시면서 저녁을 먹으며 난 나의 작품에 고개를 저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조기찜이 엄청 짠 것이다. 간이 된 조기에 또 간을 한것이다. 난 몰랐다.간이 된건줄. 죄송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그저 '에구 짜'를 연발하며 나를, 나의 솜씨를 탓할 밖에. 그래도 어머니는 먹을 만 하게 짜다며 딴 말씀을 안하신다. 설겆이를 하는데 어머니가 끝까지 도와주신다. 저녁 설겆이는 잘 안도와 주시는데 오늘은 이상하다. 그래 고마우신가 보다. 말씀은 안하시지만 고마움을 설겆이 도와주는 걸로 대신 하시는구나.내 마음도 좋다. 이제야 마음이 편하다. 어머니의 인생이 너무 가엾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살아보지 못한 분이다. 지금도 나는 그런 어머니가 가엾고 무섭다.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전 어머니 처럼은 안살아요.아니 못살아요.어머니도 제가 어머니처럼 사는거 안바라시죠?" 하필 어머니의 생신은 추석 전날이다. 여자들이 죽도록 일만 하는 그날. 제사 준비 하느라 생일 미역국도 마음 놓고 못드시는 아니 못드셔본 그런 분이다. 올해는 칠순이신데 아무도 얘기가 없다. 어머니는 행여 우리가 먼저 뭘 하자고 얘기를 꺼낼까봐 입단속을 시키신다. 그러시는 어머니를 보면 난 더 슬퍼진다. 우리 어머니는 내 친정 엄마와 너무 비슷하다 나이도 살아온 세월도 고생한 젊은날도 내가 아는 강한 어머니는 슬픈 여자다. 저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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