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군요. 키보드를 두드리는 저의 손가락 끝은 얼음처럼 차갑고 아랫도리에는 아침에 두르고 온 목도리를 칭칭 둘러매고 있습니다.
회사 사정이 부도 직전입니다. 어음,가계수표만 안 돌릴 뿐이지 빚이 엄청나고 인건비도 제때 안 나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 회사에 붙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자이고 올해 나이가 29살입니다. 이렇게 날이 추워지는데 난로 하나 없습니다. 직원이래봤자 다 잘리고 저만 남았습니다. 월급 3개월치 밀렸지만 못 받는다고 생각하고 앉아 있습니다. 하는 일 외국 바이어 상담과 잡업무입니다. 커피 심부름, 은행 거래, 전화받기, 사장 시다바리 정도.. 별 꿈도 없는 자리이며 돈도 몇 십만원 밖에 안됩니다. 보너스도 없고 월차도 없고 월급만 제때 나오면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왜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못하는걸까요?
다른 건 다 참겠는데 추위는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선풍기 모양의 작은 난로라도 하나 있으면 손이라도 데울텐데.. 화장실도 고장나서 아래층 식당 화장실에서 볼 일 보고 물 길러다가 끓여 먹고 설거지도 합니다. 눈치도 보이고 하지만 미안하다고 하면서 이용합니다. 사장은 주로 외부에서 일을 해서 자세한 안의 사정을 모릅니다. 사무실이 얼마나 추운지 알 길이 없죠. 저는 다만 설거지 할 때 따뜻한 물이 좀 나오고 우리 층에 화장실이 하나 있고 정수기 없어도 됩니다. 그저 물이 잘 공급됐으면 좋겠어요. 아침마다 걸레 빨 때 찬물이 어찌나 속이 쓰리는지..
그래도 이렇게 여유부리는 시간도 있고 만족해야겠지요? 이게 제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고 이 안에서 기쁜 일을 찾아야되겠죠? 남들은 그럽니다. 니가 뭐가 못나서 그런 쓰레기 같은 곳에서 일하느냐고요 그럼 저는 할 말 없습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니까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그렇다고 놀 수는 없지 않느냐고.
다니면서 다른 곳 알아본다고 해서 결코 쉬운 일 아니더군요. 면접도 근무 시간에 보러 가야 하고 그렇다고 하루 쉴 수도 없고 토요일 오후밖에 시간이 안 되는데 토요일 오후에 면접을 보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저의 학교 성적은 학점은 만점입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사용가능한 언어는 영어와 일어 입니다. 고급은 아니지만 웬만한 비지니스 다 가능합니다. 컴퓨터 자격증 웬만한 거 다 있습니다. 매킨토시 제외하고 다 다룹니다. 하지만 불러주는 곳이 없습니다. 학점이 턱없이 높다고 도리어 핀잔입니다. 대학 때 놀지 않고 학점 관리만 했냐고..하루종일 도서관에 살았겠구만 하는 눈빛이 강합니다. 그렇습니다. 남들 놀 때 도서관에서 자료 찾고 학점 관리하고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만점 나왔습니다. 엠티 한 번 안 가고 축제 한 번 참여 안 했습니다. 그저 학교-도서관-집 만 다녔습니다.
자취를 하기에 생활비를 벌어서 다녀야했기에 등록금은 큰 부담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바보 같이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혼자 일하는데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것 같단 생각도 해봅니다. 난로 없으면 줄넘기 해서 몸 데우면 되고 걸레 빠는 물이 차갑다면 물 데워서 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월급 밀리긴 해도 이제부터는 꼬박꼬박 잘 챙기면 되고...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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