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이사를 가야할 것 같다는 소식. 가슴 한켠이 싸아해옴을 느낀다. 몇 년간이나 끌어오던 남편의 사업을 정리하고 일자리를 찾아 떠나야 한다고 한다.
늘 어딘가 미약해보이기 때문에 안쓰러웠다. 딸셋의 셋째에 그 밑에 남동생. 전통 한국 사회에서는 태생부터가 약자(minority)이다. 게다가 아들을 무지하게 바라던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에 시달리던 터. 분명 아들일 것으로 짐작해 이름까지 남자아이 이름으로 지었다가, 딸이 태어나는 바람에 이름까지 남자이름을 받고, 서운함의 눈길을 그 새싹이 받았을 터이다. 연년생으로 뒤이어 대망의 아들이 가족사에 들어오는 바람에 그나마도 젖도 제대로 못먹고 신식(?)으로 우유를 먹으며 큰 아이. 그래서 그런지 동생은 늘 소극적이었다. 유달리 개성이 강한 큰 언니. 그에 뒤질세라 자신의 세계를 세우기 위해 늘 투쟁적인 둘째인 나. 그 틈바구니에서 동생은 숨죽이며 성장했다. 세상에서 주목받기에는 너무나 여린 아이였다.
어느날 그 아이의 반에 가보니 받아쓰기를 제대로 못하여 남아있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운동장에서 살짝 들여다 본 동생은 세상에 잘못 표류한 외계인 같은 표정이었다. 세상의 호전성에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그러던 아이가 어찌어찌 자신의 힘으로 학교도 가고, 취직도 하였다. 늘 내가 생각하던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난, 이미 세상의 힘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파악하고 있었고, 그 속에서 적당히 즐기며 살수 있는 교묘함을 터득하고 있었다. 난, 동생에게 더 많은 주문을 했다. 그 아이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들, 그리고 그럴 투쟁의지도 없는 그런 것들을 요구했다. 그리고 동생은 늘 그런 나에 대해 피해의식을 가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열등의식이 되어 자신과 남을 괴롭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그러기에는 너무나 착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동생의 글은 가끔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동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그 아이가 자신의 길을 가는 독립적인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보지 못했음을 자인할 수 밖에 없는 글들이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냥 사랑인데, 난, 동생의 딸들에게서 또다른 동생의 모습을 본다. 그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받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을 듬뿍 주고 싶은 동생의 속마음을 누군들 모른척 하랴. 하지만 어쩌랴. 자신 또한 생활고로 인해 늘 아이들끼리 남겨지는 형편이 되다니. 모자람으로 인해 타인과 사회에 공격적이 되거나 패배주의에 사로 잡히지 않고 건강히 한 어머니로서 가정을 지켜가려는 그 노력은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기대하는 손해보지 않으려는 이기심을 온통 벌거벗겨 놓는다.
그런 동생이 이곳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내곁을 떠나야 한다. 옆에 있어도 서로의 인생에 간섭할 수 없다는 핑계로 늘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었다. 사람의 존재란 것은 유능함이나 생산성 따위로 평가될 수 없음을 이제야 슬며시 알게 되는 것 같다. 그저 존재해주는 것 자체로 좋은 것을. 누군가 나를 속속이 알고 있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나이가 40이 넘어서야 알아지다니.
이 연말에 한해를 정리한다면 마음의 빚을 정리해야 한다. 누구에게 얼마를 빌려주었나를 계산할 것이 아니다. 내가 얼마의 빚을 졌는가를 생각해 본다. 부지간에 나는 채무자가 되었다. 그래서 겸손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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