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분들 글 하나씩 읽어내려 가다가..
답글 다시는 분들 정말 진지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서.. 저도 용기를 내어 제 얘기를 꺼내요..
10년을 만난 사람이 있어요..
고2때 알게 된 사람인데.. 대학 들어가면서 정식으로(?) 사귀게 되었답니다. 학번이 나보다 한 학번 빠르지만, 우린 동갑내기였구요.. 군대에 가 있었던 2년 2개월을 포함하여 대략 4년을 아무 고민 없이 참 행복하게 보냈던 것 같아요..
그 사람.. 천성이 선한데다 성격, 외모까지 정말 흠이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내가 취업을 준비하던 4학년때..(4년전..) 그 사람은 군대를 갔다와 2학년에 재학중이었는데요..
그 사람 아버님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게 되셨어요..
휴학을 하고 장남노릇을 해야한다 하기에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보험 하나 들어놓은 게 없어 당장 병원비가 막막하고 예금은 커녕 약간의 빚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버님 쓰러지시면서 그때 처음으로 그 사람 집엘 가보게 되었는데 산아래 있는 조그마한 판자집이 내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냥 평범은 할거라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사는 게 너무 허름해 미안하단 말에 아니라고 웃어보이곤, 며칠을 우울하게 보냈던 것 같아요..
집에도 말 못하고 고민하다가..
생각끝에.. 별문제가 아닐거라 맘을 다부잡고..
그 사람의 탓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4년이 더 흘렀습니다..
그 사람 아버지 살려 보겠다고 어머님이랑 같이 정말 고생 많이 했는데요.. 제가 그걸 옆에서 다 지켜와봐서 넘 가슴이 아픕니다.. 근데 아버님 돌아가시면서,
병원비에 생활비에 이래저래.. 빚만 떠앉고 학교도 자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다시 상황 되면 복학하면 되지 않느냐고 휴학하라고 설득했는데.. 괜히 미련생긴다고, 자퇴해 버리더군요.. 그 일땜에 크게 다퉜던 기억도 있네요..
여동생도 2년동안 병원에서 아버님 간병하다가 학교도 그만두고, 백화점에서 일했었는데 현재는 좋은 사람 만났는데 상황이 안되어 동거하고 있구요, 남동생은 인문계 고등학교 나왔는데 대학진학하는 시기에 아버님이 쓰러지셔서 어정쩡하게 아르바이트 같은거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어머님은 아버지일로 신용불량자로 등록되어, 식당 같은 데서 계속 일하셨는데, 지금은 어떤 남자분을 알게 되어 같이 살고 계셔요..
문제는 그 사람입니다..
공부도 잘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참 당당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저도 조용한 편이고 그 사람도 조용한 편이라 오래 만나면서도 큰 소리 내고 싸워본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근래들어서 제가 일방적인 짜증을 많이 냅니다.. 정말 답답해요..
지금 2년째 막노동을 하고 있어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8만원짜리 방에서 남동생이랑 둘이 살면서, 쳐다보면 눈물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한겨울에 그 사람 집에 들렀다가 입김이 날 정도로 찬 냉방에 이불 몇 겹 덮고 자는걸 보고 맘이 아파 기름넣어준 적도 있고, 이래저래 방세 밀리거나 공과금 밀리는 것 보고 봉투에 돈 챙겨준 적도 여러번입니다..
굉장히 자존심 상해하면서 마다하지 않는걸 보면서 굉장히 슬펐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중간에 제 권유로 공무원 공부를 해보기로 했었어요.. 100만원 정도 들여서 학원 수강증이랑 책등을 사줬는데 한달 정도 다니더니,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된다고 막노동을 하러 나갔어요.. 공무원이 아니여도 되니, 정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음 좋겠다고.. 골백번을 얘기 했는데.. 3월말까지만 지켜봐달라.. 7월말까지만 지켜봐달라.. 올해까지만 지켜봐달라.. 그러면서 2년을 갉아 먹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나이 지금 스물일곱.. 가능성이 많은 나이라 합니다. 지금 선택하는 일이 자기 평생의 일이 될지도 모를테니 신중을 기하고 싶고, 잡념이 생기지 않는 막노동이 지금 현재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 합니다.
서너시간 얘기 하고 나면.. 아.. 이 사람 말이 맞는것도 같다 싶어.. 돌아서 옵니다.. 그러다가 저 사람 평생 저렇게 살것만 같아 가슴이 마구 답답해져 옵니다..
며칠전엔 원래 대졸자만 뽑는데 사람이 급해 괜찮은 기회라고 그 사람한테 이력서 한번 넣어보게 하라는 친구의 귀뜸이 있어 얘기 꺼냈다가 대판 싸움만 했습니다.
12월까지만 좀 내버려달라네요.. 자기가 피가 마른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제딴에는 좋은 방향으로 가보자고 하는 말인데..
요즘엔 저도 심한 말을 많이 합니다..
많은걸 바라는 것도 아니라고.. 오빠가 직업이 있냐고 차가 있냐고 집이 있냐고.. ㅠ.ㅠ 말해놓고.. 굉장히 미안하더군요..
저는 학원강사일을 하는데 나름대로의 능력을 인정받아 연봉 5000에 가까운 급여를 받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벌어논 게 없어도 시작이 크게 궁상맞진 않을테지만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하루에도 열두번의 생각이 왔다갔다 합니다..
서른까지 지켜보고 있자 맘 먹은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또 흔들립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게 맞는지 아닌지도 분별이 안가요.. 일주일 정도 독하게 맘먹고 연락 안하면.. 가슴이 굉장히 아픈데.. 연락해서 얼굴보면 또 한숨이 쉬어져요..
그 사람..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는 지고지순한 남자입니다. 근래 복잡한 생각으로 저는 소개팅을 몇번 해봤는데요..
세상엔 참 좋은 많은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꼭 오빠여야 한다 했던 마음가짐이 좀 약해진 거 같아요..
두서없이.. 너무 글이 길었네요..
그 사람.. 뭘 하든.. 그 분야에서 인정받고 성공할 사람 같아요.. 그런 생각 자꾸 드는데.. 그게.. 제 콩깍지일 뿐일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거죠.. 환경이 이래도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나요? 아님, 첨부터 문제 없는 인연을 새로 만드는 게 맞을까요?
많은 분들의 조언 부탁드립니다..
|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