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는 10년을 사귀다 결혼이라고 했는데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많이 하더군요. 그 잘난 서울대 출신이라서요. 나는 돌대가리에 집안도 후접쓰레기에도 너무 가난하다고 앞에 놓고 무시했답니다. 저의 친정아버지 만나서는 아들 유학가야 되는데 그 돈 될 수 있느냐고 따지고...
87년에 제 결혼 비용으로 천 백만원이 들어갔는데 그 돈 고스란히 남동생이 갚았답니다. 서울에서 살게 되는데 전셋집도 아버지께서 삼백오십만원 주셔서 지하 단칸방 얻었지요. 어머니 계산법으로는 정말 믿지는 장사 였답니다.
시어머니는 저에게 <인간쓰레기>라고 하더군요. 결혼을 앞두고 옷맞추게 나오라고 합디다. 인사를 공손히 하고 부산 국제시장에 따라가서 옷을 골랐는데 돈을 내라고 하더군요. 무슨 돈인지 몰라서 우물쭈물 하고 있으니까 <너거 엄마라는 사람은 돈도 안주고 옷맞추러 내보내더나> 그래요. 나는 그 돈이 친정엄마가 내는 돈인지도 몰랐는데 결국 그 날 종업원의 경멸어린 눈빛을 뒤로 하고 집으로 왔어요. 엄마에게 울면서 왜 돈도 안주고 옷맞추러 내보냈는냐고 했더니 그 옷은 신랑측에서 해주는 옷이랍니다. 친정집에서 신랑에게 해주는 예물과 양복 두벌에 버금가는 것으로요. 결혼하면서 물빨래 하는 한복 한벌 받았습니다. 화장품은 받는 건지도 잘 몰랐고요. 시댁에 보낸 돈 중에서 얼마를 떼어서 도로 주는 것은 그 때도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90만원 어치 옷감을 끓어 주었는데 그게 우리집으로 오는 예단이었답니다.
지금은 친정동생이 자수성가해서 수십억 자산가입니다. 나도 살만큼 사니까 시댁에 생활비는 넉넉히 드리고요. 9월 10월에 내려보낸 돈만 백 이십만원입니다.
친정동생이나 친정집에서는 매달 우리가 먹고 남을 만큼 많은 음식과 생활용품과 내려가면 우리집 아이들에게 넘칠만큼 용돈을 주십니다 중학교 입학한다고 천만원을 주셨어요. 시댁에서는 만원 하나 주시지 않지만요. 며느리들에게 하나같이 그렇게 모질게 대한 까닭에 지금은 큰 형님이나 아랫동서가 어머니 보려고도 안합니다. 나이가 드니까 어른도 별로 무섭지 않고요. 친정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참고 살아라 참고 살아라 그래요. 생각해보니 내가 약간 어리숙해서 그나마 잘 견뎠다고 생각해요
살다보니까 예단으로 생긴 상처가 오래가더군요. 이렇게라도 푸세요.
말을 하다가 보니까 친정자랑 같아지고 지금은 마음속에 곱게 묻어두었다고 생각한 상채기가 덧나네요. 그냥 눈물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