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 피로 밝혀 놓은 등불 '
나뭇잎 푸른 그늘 아래 등불 하나 밝혀져 있습니다. 그 불빛 얼마나 밝고 환한지 그대에게로 가는 내 마음의 혈관까지 모두 드러날 것만 같은 유월입니다. 그대에게로 가는 길, 산딸기나무의 가시에 피 흘리고 또 유월의 뱀들이 똬리를 틀어막고 있지만 나는 저 붉은 유혹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한 방울 한 방울 붉은 피로 밝혀놓은 등불 나는 그 불빛에 눈멀어 그대에게로 갑니다. 심장의 피가 다시 뜨거워집니다. 더운 피가 돌고 돌아 손톱 밑이, 발바닥 끝이 뜨거워집니다. 나는 저 유혹 앞에 모든 것을 태워 버립니다. 그리하여 살과 뼈를 활, 활, 활 태워버립니다. 한줌 재로 남아 이제는 고요해지고 싶습니다. 투명해지고 싶습니다. 그대 앞에서 나는 붉은 무명(無明)이고 싶습니다. - 정일근의 산문집 <유혹> 중에서 -안도현시인의 작품해설 이즈음 제 작업실 주변에는 '복분자'라고도 하는 산딸기가 심심찮게 저를 유혹합니다. 복분자나무는 나무 껍질이 하얀색이어서 녹음 짙은 길가에서도 쉽게 눈에 띕니다. 산책길에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검붉은 산딸기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시 넝쿨을 헤치고 손에 닿는 그것 따먹는 일, 이 초여름에 뜻하지 않는 복입니다. 아직 덜 익은 놈은 눈으로 점을 찍어두고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맛도 얼마나 새콤한 즐거움인지요. 시인은 그것을 한 방울 피로 밝혀 놓은 등불이라고 썼군요. 시인이 쓴 산문답게 시적 이미지가 군데군데 빛을 번뜩이는 글입니다. 산딸기의 유혹 앞에 뜨거워져서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마음 끝에 저는 언제나 가 닿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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