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만 둘인 집에서 장녀로 태어나 얼마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올해 결혼을 앞둔 학생입니다.
잔소리많은 울 할머니가 울엄마 고생시킨건 밉지만,
그래도 맏며느리가 아들 못낳았다고 싫은 소리 한번 안하신건 두고두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령 그런 일에 관하여 잔소리 했다 하더라도, 옛날 분이고 노인네 이상한 소리한다고 치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어려서부터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단서를 거의 들어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부모님도 오히려 활동적인 것이 좋다며 인형보다는 장난감 탱크나 총을 사주셨고, 학교에서 필요한 일이라면 다른 남학생에게 뒤지지 않도록 충분히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딸만 있기 때문에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의무감..
이건 왜 시대를 걸러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아들낳기 전까지 낳은 딸들은 분명히 아들만큼의 존재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머리꼭지가 돌아버릴만큼 화가 납니다.
차라리 아이를 낳는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이성이 좋다라는 주장이었으면 낫겠습니다.
마루에서 눈치보며 제사지내는게 싫으면 어서 당당히 그러지 않아도 될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모순과 불합리를 내가 아들을 낳아 해결하는 미봉적인 대응이 계속된다면, 이 땅에 어차피 태어나기 마련인 여자들은 대대손손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딸만 있다면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고, 아들만 있다면 딸이 있었으면 좋겠는 그 정도면 안되겠습니까?
제 남자친구 집은 3형제 중 막내인데 위로 두 형이 딸 하나만 낳고 단산하였습니다. 그래서 은연중 제게 눈치를 주려고 하는 중인가 본데... 어차피 내가 낳아 내가 기를것 어느 누구도 간섭과 눈치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또, 아들을 바라는 집에 아들 하나 낳아서 그 놈이 이담에 커서 결혼하면, 그 마누라 될 여자는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 가당치도 않은 장남 역할하느라 평생 부담지고 살 내 아들도 벌써부터 걱정이고.. 그리고 명절이면 우리집에 바글바글 모여들 손님 생각하면 전 절대 아들낳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낳고 안낳고는 하늘이 주신 것!
제가 제 아이를 당당하고 바르게 키울 수 있는 여건하에 자식을 낳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혹여 불행히도 아들을 낳게 된다면,
"엄마처럼 자유롭게" 살으라고 가르칠 것입니다.
저희 엄마는 사위될 제 남자친구를 참 좋아하셔서 이제 40대 아줌마가 서른이 넘어버린 사위감에게 이름을 부르십니다. 오히려 남자친구가 엄마한테 다정다감하니 살갑게 굴거든요.
무뚝뚝하고 성격 지랄맞은 딸내미 대신 그 딸이 결혼하게 될 사위에서 나름대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신거죠.
암튼, 다른 이유가 아닌 의무감 때문에 아들낳는 그런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성쓰기도 하는 마당에 代를 잇는다는 것이 뭐 그리 큰 일입니까? 이놈의 호주제도 때문에 딸이 결혼을 하면 남이 된다는 의식이 큰 것 같은데 이 망할놈의 제도도 없어져야 합니다.
아~ 글을 쓰다보니 점점 흥분이 됩니다.
어린 것이 무례하게 말했다고 흉보지 마시고, 요새 젊은 것들은 생각이 많이 다르구나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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