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풀리고 봄바람이 불어서일까? 불현듯... 이렇게 다람쥐쳇바퀴 돌듯 매일 똑같은 생활, 단조로운 일상, 뻔한 월급쟁이 생활이 지겨워지더라구요.
제가 목표로 정한 금액이 있는데.. 계산을 해보니까 지금처럼 모은다면 앞으로도 20 개월은 더 모아야하겠더라구요
까다로운 사장님 비위 맞추는 것도 지겹고 빨리 돈 모아서 관둬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너무 간절했지요.
그래서 며칠 전 제가 살고있는 지역의 생활정보지를 다 구해서 퇴근 후에 할 수 있는 알바를 구하기로 하고 여기 저기 기웃거려 보다가.. "재택근무 가능. 인형다듬기" 라는 구인광고를 보게 됐답니다.
인형이라면 무지 좋아하고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다 위치도 바로 저희 집 근처라 얼씨구나 하고 토요일날 일찍 퇴근을 하고 찾아갔더랬습니다.
저는 처음에 털인형인줄 알았는데.... 웬걸 석고같이 딱딱한 마블인형같은 거였는데... 거푸집같은데서 바로 나온 그 인형을 칼로 다듬고 라이터로 지지고한 다음에 사포로 문질러서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한 개당 800 원이라고 하는데... 순간 제 뇌리를 스치며 그럼 10개면 8000 원? 괜찮네~~ 하는 생각에 덜컥 하겠다고 결정을 했습니다.
25개 (20000 원어치를 받아갖고) 를 일요일 저녁까지 해다주기로 하고 집에 가지고 와서 3시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엄마. 옆에서 구경하시면서 이렇게 힘든걸 어떻게 할꺼냐며 걱정부터 하시더군요. 이 정도 쯤이야..큰 소리를 쳤지만... 웬걸, 무슨 인형들이 돌 보다 더 단단한겁니다.
칼로 다듬고 라이터로 녹여도 다듬어질 생각도 안하더군요.
한 개 다듬는데 거짓말 안하고 4시간 걸리더군요. 하나 다듬기도 전에 저녁 먹으라는 엄마 말씀에 식탁에 앉았지만 어찌나 쭈그리고 앉아서 힘을 줬는지 숟가락 젓가락 들 힘도 없었습니다.
제가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당신이 차라리 돈을 줄테니 못한다고 하고 다시 갖다주라시더군요. 괜히 엄마의 말씀에 오기가 더 생겨서 아냐..끝까지 하고 말거야... 하고 다시 큰 소리를 쳤습니다.
수백번씩 하는 사포질에 하얀 횟가루가 제 방 가득 날리고 있었습니다. 머리며 몸,이불 옷장에는 횟가루와 석고 덩어리가 뒤범벅이 됐고 또 손가락이며 손목 팔꿈치 어깨는 어찌나 쑤시고 아픈지....
저녁 12시가 됐는데 겨우 2개를 끝냈지요. 1600 원 어치더군요.
지쳐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일요일 새벽 5시 반이더군요. 일어나자 마자 다시 인형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제 처지가 왜 이리 처량해지는지... 그 놈의 돈이 뭔지..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충대충 할 수 밖에 없더군요. 시간도 없고 몸도 너무 아프고...
갈 수록 손이 아파서 밥도 못 먹겠더라구요. 엄마 걱정하실까봐 뜨는 시늉만 하구 다시 제방으로 와서 고 놈의 돌 보다 단단한 인형들을 깎고 다듬고 문지르구...
어느 새 밖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리도 못 펴구 몸은 지쳐가고 있는데..
아빠가 전화왔다고 받으라고 하시더군요.
사장님이었습니다. 대뜸 화요일날 스케쥴을 물으시더군요. 화요일이면 이틀 후인데 내일 출근해서 물어봐도 되는거 아닌가요? 정말 자기 생각 밖에 안하는 사람입니다. 전 무슨 큰 일이나 난줄 알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나서 모르겠다고 했더니... 겨우 이틀 후 일정도 기억 못하느냐며... 비꼬시더군요. 별로 급한 일도 아닌데 일요일 저녁에 전화해서 시비거시는게 저도 은근히 짜증도 나구 가뜩이나 알바땜에 신경도 곤두서고 해서 저도 암말 안하고 있다가 끊어버렸습니다.
저녁 9시 정도가 돼서 대충 다듬기를 마치긴 했는데 몸은 천근만근 방안은 온통 횟가루 천지라 손끝 하나 움직일 수도 없이 힘들더군요. 다음날 아침에 갖다주기로 하고 끙끙 앓다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 6시 정적을 깨우는 전화 소리에 무거운 눈을 떴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새벽같이 전화하는 또라이는 누구야? 우리 사장님같은 사람이 또 있네....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또 전화 받아보라고 하시더군요.
설마 했는데 역시나 저희 사장님이셨습니다.
왜 전화했는지 아세요? 기가 막혀서~
며칠후에 있는 식사약속이 정확히 언제냐고 물으시더군요. 정말 짜증났습니다. 이따가 회사가서 물어봐도 될 것을....부모님 다 주무시는 6시에 꼭 전화를 했어야 햇는지..
당신이 안 물어봐도 제가 다 어련히 알아서 챙겨줄텐데...
저도 말이 좋게 안 나가더군요. 며칠 후라고 말씀드렸더니 "알았어" 하고 끊으시더군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지가 사장이면 다야? 회사에서 사장이면 사장이지 왜 회사 밖에서도 사장처럼 군림할려구 구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내가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회사를 다녀야하나 싶구요....
아침 출근길에 그 인형을 갖다주러 들렀습니다. 거기서 하는 말이 딱 2개만 합격이고 나머진 돈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아~ 황당. 그거 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 1600 원도 지금 당장 줄 수 없고 나중에 모아서 준다는군요.
아침부터 싸우기도 싫고 몸도 아프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그냥 회사로 왔습니다.
회사로 오는 발걸음 또한 가벼울리 없죠.
하필 어제,오늘 기분도 우울하고 몸컨디션도 안 좋은데 사장님까지 재를 뿌리실건 또 뭔지..
참 돈 벌기 힘들다....라는 생각으로 양 쪽 손목에는 케토톱을 붙이고 사무실에 들어왔습니다.
사장님 얼굴도 보기 싫고... 참 알바같지 않은 알바 땜에 토,일요일 금같은 시간을 횟가루 마시며 씨름하고 돈 한 푼 못 받게 생긴 제 처지가 한심할 뿐이더군요.
우리 사장님 사무실 문 열고 들어오시자마자 제게 어제랑 오늘 이틀 동안 집으로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시더군요.
아~~~~~~~~~~~~~
우리 사장님, 미워해야합니까 좋아해야합니까?
이래서 우리 사장님 미워할 수가 없군요. 항상 우리 사장님...사람 피곤하게 꼬치꼬치 묻고 짜증나게 해놓고 나중에는꼭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완전히 병주고 약주고 예요. 한 두번도 아니구..
점심먹고 욱신거리는 몸과 다운되는 맘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네요.
그래도 짧은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정말 많은걸 느꼈답니다.
참 돈이란거...벌기 어렵구나... 지금 내 직장. 꼼꼼하고 피곤한 스타일의 사장님 밑에서 불만 많고 관두고 싶고 매일 그렇게 살았지만....
800 원 한 장 벌기도 렇게 힘들지 않은가.. 차라리 지금 이렇게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너무 뼈저리게 드네요.
그래도 빨리 돈을 모아야겠어요. 저희 사장님 밑에서 조금만 더 있다가는 죽어버릴 것같아요. 숨이 막혀서..
저 벌써 6년째거든요. 사장님 성격,됨됨이 알만큼 알고...이제 척하면 또 어떤 식으로 그 꼼꼼한 유난을 떨까 감이 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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