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 산골집 앞에는 맑은 냇물이 흘렀다. 우리집에 들어오려면 그 냇물을 건너야만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냇물 위로 나무 다리를 만들었고, 이름을 '오작교'라 지었다. 오랜 세월 오토바이를 타셨던 아버지는, 그 아슬아슬한 오작교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토바이를 이용해 건너다니셨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오작교 건너기의 달인이셨던 아버지도 결국 오토바이와 함께 오작교 밑으로 추락한 적이 있었다. 집안에 있다가 풍덩하는 소리에 형과 두 누나를 따라 나가보니 아버지는 냇물 속에서 오토바이를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계셨다. 어두운 밤이었는데, 냇가로 추락한 아버지는 다행히 다치지 않으셨다.
우리들은 아버지를 도왔지만 쉽지 않았다. 얼마동안 낑낑거렸지만 계속 실패했다. 아버지는 미안했는지, 당신 혼자 할테니 우리에게 그냥 집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그 말에 형과 누나들은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전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때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계속 아버지 곁에 남아 함께 냇가에서 오토바이를 끌어올리려고 낑낑거렸던 기억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었다.
돌아보면 그 당시의 일은 이후 아버지를 대하는 우리 형제들의 모습을 예고했던 것 같다. 형과 두 누나는 이혼한 엄마와 함께 도시로 떠났고, 아버지 곁에는 나만 남았다.
아주 냉정하게 생각하면 아버지는 지지리도 못난 분이셨다. 새엄마와의 생활도 1년을 채 넘기지 못했으며,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무능하셨다. 술은 거의 '알콜중독' 수준으로 좋아했고, 노름을 좋아하셔서 요즘말로 하자면 그야말로 '노름 폐인'이셨다. 어린 나를 홀로 산골집에 두고 1주일 동안 노름판에서 돌아오지 않았던 일도 비일비재했으니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런 아버지 곁을 내가 끝내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지지리도 못난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측은함 때문이었다. 나마저 떠난다면 산골에 홀로 남을 아버지에 대한 걱정은 어린 내 발길을 아버지 곁에 떠나지 못하게 했다.
홀아버지와 막내아들의 서툰 세상살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형과 누나를 떠나보낸 이후 눈물을 자주 흘리셨다.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이 가장 보기 힘들다는 아버지의 눈물을 나는 일상적으로 보며 자랐다. 외롭다는 말을 반복하시며 연신 눈물을 닦아 내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외로움의 의미도 몰랐던 어린 나는 많이도 울었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버지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늘어갔다. 아버지에게 내 빈자리가 컸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외로운 삶의 무게가 버거웠기 때문일까. 아버지는 내가 당신 곁을 떠나있는 시간이 가장 길었던 시기에 아무도 없는 산골집에서 홀로 이승의 끈을 놓으셨다.
내 생의 동반자였던 아버지의 죽음이 드리운 허전함의 그늘은 컸다. 그리고 끝까지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던 나에 대한 아버지의 배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함께 살아온 시간만큼 아버지는 내 기억 속에서 무수히 등장하고, 아버지와의 추억을 더듬는 일은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떠올리는 건, 그리움의 자리를 메우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삶을 성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지리도 못난 아버지의 삶 속에는, 동반자였던 막내아들, 나를 향한 진득한 애정이 있었음을 느낀다. 지지리도 못나게만 보였던 아버지의 삶은, 애정 없이 무감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나를 반성하게 한다.
내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나이에 이른 지금. 살아간다는 건 과거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녹록하지가 않다. 그리고 나 또한 과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외로움의 무게 때문에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외로움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과거 아버지는 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셨는지, 어린 막내아들에게 외롭다는 말씀을 왜 그리 자주 하셨는지를 작게나마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 아버지는 푸념만이 아니라 정말 외로우셨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런 못난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다. 시덥지 않은 그 글이 운좋게 mbc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눈에 띄었나 보다. 지난 여름 팔자에도 없는 tv 카메라 앞에서 이틀을 보냈다. "mbc 스페셜 - <가족>"에 그렇게 출연하게 되었다. 나는 이번주 일요일(28일) 2부 '아버지와 아들'에 나온다. 아버지 덕택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훌륭한 내 삶의 동반자다.
/박상규 기자/ 오마이뉴스 2003-09-22 10:09:30
덧붙이는 글박상규 기자는 '개천마리네집(http://1000dogs.com)'에서 글을 씁니다. 내년이면 서른을 맞이하고 곧 <서른 즈음에 떠나는 여행>을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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