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저, 모두 유달리 맥주를 좋아해서 집안엔 항상 빈 맥주병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보통땐, 빈 맥주병을 사왔던 집에 되팔아 필요한 용품으로 바꿔오는데, 우리가 가는 가게 아저씨가 소문날 정도로 워낙 불친절한 인사로서, 빈병 가져오는 걸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냅니다.
팔땐 언제고...참내...
우리집에서 가까운 가게가 두 군데인데, 불친절 아저씨네가 종류도 많고 더 싸서, 어쩔 수 없이 거길 가지요.
남편은 빈병을 그냥 밖에 내놓으라 하더군요.
불쌍한 동네 할마씨들, 용돈 보태주는셈 치라고...
속 좁은 소견으로는 한두병도 아니고 스물 댓병이나 되는데, 그걸 돈으로 치니까 작은 돈이 아니더이다.
불친절네 가자니 그 면상이 보기 싫고, 여기서 산걸, 저기에 가져가자니 눈치가 보이고...
그래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는 모 대형할인점에 가져다 팔기로 했죠. 일반 가게에선 30원 쳐주는 걸 거기선 50원에 쳐 주거든요.
혼자 가려했는데, 사야할 물건이 넘 많아 혼자 지고 오기가 부담되어, 어쩔 수 없이 남편과 가게 되었습니다... 카트에 맥주병 담아 '쨍그랑, 쨍그랑'거리며 오는 마누라가 밉고 창피한 남편은 저만치 남인양 말도 없이 앞서 가더군요.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빈병 엎어지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가는데, 내가 자처한 일임에도 저만치 가는 남편이 야속해 보이더이다.
어찌 어찌해서 지전 일천원과 동전 이백 오십원을 손에 받아 쥐는데...눈물이 나오려는 걸 꾸욱 참았죠. -.-;
참고로, 저는 백화점에서 비싼 옷 사입으면서 시장에서 콩나물값 깎는 류의 비합리적이고 몰상식한 사람은 아닙니다.
이만 사천원짜리를 이만 오천원에 잘못 샀을 때, 속은 쓰려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눈앞에 일천원이 있는데 그냥 포기할 만큼 대범하지 못한 그저 소심한 아낙네죠.
남편은 자기 마누라가 궁상을 떤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들 심리가 그런가 봐요. 마누라가 싼 거 찾으면 자존심 상해 하고...'내가 돈 많이 못 벌어다 줘서 내 여자가 저렇게 궁색해지는구나' 하는 착하고 미안한 마음의 발로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착각인가? -.-)
별로 화내지 않는 사람인데, 오늘은 역정을 내더군요.
"남편이 그렇게 싫어하면 하지 말지, 꼭 당신 뜻대로 해야겠어?"
이글 읽으시면서 아마 이런 분들 계실겁니다.
'남편이 그렇게 싫어하면, 천원 버리고 만다'
지금 저도 반쯤은 그런 마음이 듭니다.(그러다 빈병보면 다시 마음이 바뀔지도...^^;)
일천원짜리 한장이 우리 생활에서 얼마만큼의 소용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새삼 논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주부들 살림하다 보면 돈 일천원이 클 때도 있지 않나요?(나만 그런가? 6-.-)
돌아오는 길에, 역정내는 남편과 함께 병판 돈으로 롯데리아에서 파는 500원짜리 마블 아이스크림 두개 사서 먹었습니다.
남편에게 '디게 맛있지?'했더니 남편이 저를 가재미 눈으로 보며 웃음을 터뜨립니다.
'으이구, 이 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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